본문 바로가기
다산책방/山山山

금산 진악산(보석사108-23)

by 소연(素淵) 2022. 12. 12.

보석사 주차장에 미리 가 있는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진악산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려 했다.
그런데 이른 시간이여서인지, 아니면 휴게소가 폐쇄되었는지 문이 닫혀 있었다.
너무 추워서 모두 보석사까지 왕복을 했다.

원점 회귀 산행이 싫어서 보석사에 차를 한대 놓고서 다시 진악산 주차장으로 왔다.
산행 들머리는 수리넘어재(해발300m) 진악산 주차장이다.
산행 코스는 진악산광장(수리넘어재) → 관음굴(안내려감) → 진악산 관음봉(1박) → 물굴봉(735.7m)(물굴은 안감) → 도구통바위 →보석사 → 보석사주차장으로 총 7.56km이다.

첫 시작은 가파른 계단이였지만 능선을 타면
조망이 아름다워서 감탄을 하면서 즐겁게 산행을 했다.
진악산의 악은 즐거울 락이다. 진락산이다.

올라가다가 짧게 가파르게 오르기를 반복 하면서 산을 올랐다.
735m의 낮은 산인데 능선길로 접어들자 산그리메가 펼쳐진다.
조망이 일품인 산이다.

12월10일은 충천권은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았다.
그래서인지 산 위에서 보는 산 능선들은 더 신비롭게 보인다.
산에 도인이나 신선이 산다면 아마도 폐가 안 좋을 것 같다.
늘 운무에 쌓여있다.

절벽끝에 서있는 기분이다.
하지만 아래를 내려다 보면 웃음이 나온다.
절벽이 아니다. 물론 떨어지면 조금 아프겠지만 반 층 높이이다.

위험하지 않다고!!

조금민 더 앞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조마조마해 하며 비명을 지른다.
본능적으로 무게 중심이 엉거주춤 엉덩이에 실리면서 조금 뒤로 뺀다.
무섭지는 않지만 순간 현기증이 날수도 있으니 조금은 조심스럽다

이 정도에서 두팔을 올린다. 만세~~~~

얼굴바위를 지나쳐 가다가 뒤돌아보면 스릴넘치는 절벽 바위가 있다.

영국의 클리프모어 만큼이나 사진은 멋지다.

일어나기가 더 아슬아슬 하다.

주루룩 밀리면 어쩌지, 엉덩이에 힘이 들어간다.
뒤로 뒤로 몸을 밀면서 일어났다.
이 바위의 금도 언젠가는 두쪽이 나겠지.

아슬바위 아래에 얼굴바위가 또 하나있다.
왠지 착한 여인이 아니라, 무서운 높은 곳에 사는 여인네 같다.
내 보기에 그런거니.

블랙야크 명산 100+인증을 했다.
내게 중요한것은 100+가 아니라 100대 명산인데
요즘은 100대 명산을 못갔다.

대둔산은 정말 멋지다. 대둔산 왼쪽에 보이는 산이 천등산이라 한다.

헬스포츠 텐트를 가져온 청년이 드론으로 찍어준 풍경이다.
빨간 에난을 가져온 보람이 있다. 멋있다.

저녁을 먹는 사이 일몰이 슬쩍 지나갔다.
한밤이 되자 금산 시내가 빛나기 시작한다.
보름을 벗어난 조금 작아진 달이 밝기는 엄청밝아서 밤새 훤했다.

아쉬움에 달빛을 잡아 본다.

춥지 않는 밤이다.
구름사이로 별빛이 아주 조금 빛난다.
별 빛 좀 보여다고.
별을 찾아 고개를 돌리니 아~~~목 디스크가 찌릿하다.
아~~~ 나의 원죄여

여명이 보랏빛이 돈다
미세먼지가 아직도 있나봐.

해가 솟아 오른다.
매일 매일 떠 오른다.
그래도 늘 마음 설레이며 바라본다.

드론으로 촬영

보석사를 향해 내려간다.
물굴봉 가는 길에 살짝 암릉이 있다.

관음봉이 제일 높은 봉이라 생각했는데 물굴봉이 살짝 더 높다.

겨울이라 배낭 무게가 점점 무거워진다.
일행중에 내 배낭이 제일 가볍다. 그래도 무겁다고요.
정상박은 물까지 짊어 지고 가야 하니 더 더욱 부담스럽다.
하지만 하산길은 참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다 뱃속에 넣었다
무게가 무서워 핫팩도 안가지고 갔는데, 한겨울은 핫팩을 갖고가기는 해야겠다.

끝없이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이다.

도구통 바위이다.
도구통은 절구통의 전라도 방언이다.
충청도에서 어린 시절 들었던 도구통이란 단어를 들어니 정겹다.

1000년 이상을 살아온 은행 나무다.
100년도, 아니 50년도 이렇게 다사다난하게 지나가는데
이 나무는 얼마나 많은 바람을 만났을까? 소낙비를 만났을까?
나무도 오래 사니 영물이 된 듯하다.

신라 때 창건하여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고 조선후기에 중건한 보석사이다.
창건 당시 절 앞에서 캐낸 금으로 불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절 이름을 보석사라고 하였다 한다.
보석사 대웅전은 충남 유형문화재 제143호로서 지정․관리 되고 있는 금산의 명물과 명소이다.
통일신라 현강왕 12년(886) 조구대사가 창건했다는 금산 진악산 남동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보석사의 전각은
조선후기 명성왕후가 중창하여 원당으로 삼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불전인 대웅전은 앞면 두 칸 옆면 세 칸의 겹처마 맞배집으로 다포계양식이다.
대웅전에서는 누군가의 제사를 지내주고 있어서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승병을 일으켜 전국 곳곳에 승병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든 영규대사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영규대사비이다.
영규대사(∼1592)는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로, 왜구들의 침략과 약탈에 분을 참지 못하여 스스로 승병장이 되었다.
승병 수백명을 모아 관군과 더불어 청주성을 되찾고, 이어 의병장 조헌과 함께 금산 연곤평 전투에 참가하였다가,
이 전투에서 크게 다쳐 숨을 거두었다.
영규대사비는 일제 시대때 훼손 당했다 한다.
금산전투에서 조헌이 이끌던 700여명의 의병들은 후학들에 의해 시신이 수습되어 모두 하나의 무덤에 묻히게 되는데
오늘날의 칠백의총이다.
그러나 영규스님이 이끌던 800여명의 승군(스님)들의 시신은 금산벌판에 그대로 방치되어 무덤조차 없는 상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단지 승군대장으로 활약한 영규스님만이 보석사 앞의 비석으로 기념될 뿐 함께 산화한 800여 승군들에 대하여는 비석조차 없다.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 참 중요한 일이다.

산신각에 산신령님께 삼배를 올렸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보석사는 역사에 비해 절의 규모가 참 작았다.
그래서 더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온다.

절 처마밑 풍경에 물고기가 매달린 이유는
늘 깨어있으라는 뜻이라 한다. 물론 여러가지 설이 있기는 하다.
물고기야 힘들지!!!

조사전에서 보석사를 창건한 개산조 조구대사의 진영에 108배를 올렸다. 108-23번째이다.

조사전은 서산대사, 사명당, 영규스님 등 임진왜란 당시 구국을 위해 앞장섰던 스님들의 초상이 모셔져 있다.
조사전의 전 이름이 기허당인듯 하다. 기허당의 위치가 조사전과 일치한다.
임진왜란 의병장이였던 스님들의 진영을 잊어버렸다고 하는데 사실일까? 그래서 이름을 바꾼걸까?

이사진 속에서는 조사전의 이름이 기허당이다.

해탈문은 수 없이 드나들지만
해탈은 고사하고 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다섯개의 부도가 있다.

은행나무에서 나무 다리를 건너서 보석사로 들어온다.
절은 늘 속세을 죄를 씻으라는 의미로 물을 건넌다.
진악산 계곡물 수량은 적었지만 맑았다.

진악산 보석사는 꽃무릇이 아름다운 곳이라 한다.
꽃무릇 활짝 핀 보석사를 보고 싶다.

금산인삼 시장에 가서 인삼 튀김과 인삼 막걸리를 실컷 먹었다.
조용하고 따스했던 금산 진악산 산행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