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세찬 비가 내려서
물살빠른 미시령 계곡을 건널때
무시무시한 물소리와 허벅지 까지 물이 차올라 잔뜩 긴장을 했다.
한밤 흘러가는 계곡물이 하얀 용 같았다.
밤새 빗소리가 너무 좋았다.
이른 아침 저절로 눈이 떠져서
누룽지와 샐러드를 먹었다.
커피를 내려 먹으니
아! 여기가 천상이구나
기쁨이 차올랐다.
토실토실한 털찐 너구리 한마리가
누룽지 냄새에 홀려 정신없이 오다가
나를 발견하고 재빨리 도망을 간다.
오동통한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명성산에서 주워온 밤 한톨이 주머니에 있어서 버렸더니
다람쥐 한마리가 재빨리 주워가서 계곡에서 까먹고 있다.
껍질을 벗겨서 퉤퉤하고 뱉으며 먹는 모습에
20분이 번쩍 흘러간다.
다람쥐, 람쥐는 생김새가 너무 귀엽다.
바라보면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
흘러간 옛 사랑의 노래를 들으며
침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바람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모습을 봤다.
모기가 거의 없어진 이때 맨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며
바람을 느끼다니 정말 행복했다.
밤부터 엄청난 추위가 온다는데
철 잃어버린 철쭉이 한두송이도 아니고
단체로 철없이 나왔다.
추위는 갑자기 오고
단풍은 더디온다.
2년만에 다시 올라선 마당바위다.
호랑이굴이라고 하는데
젖먹는 돼지바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보는 사람 따라 형태가 달라보인다.
전에는 이 바위 뒤에서 잤었다.
바위잡고 로프잡고 낑깅 대면서
서봉에 거의 다 올라왔다.
느린 단풍이지만 가을색이다.
모든 등산용품을 무게부터 알아보고
무게를 제일 중요하게 여겨서
다른분들이 지어준 별명이 그램이다.
비비색을 가지고 다니니 일단 가벼워서 좋고
누워서 하늘 보기가 참 좋다.
세찬 바람에도
타프 펄럭이는 소리가 안나서 좋다.
간밤에 강풍도 불고
영하로 기온이 떨어져서 얼음이 얼었다.
850그램 침낭에서 발이 시러웠다
잠결에 양말을 겹쳐 신고 겨우 잠이 들었다.
여명이 밝아오고 일출을 보러 바위에 올랐다.
기온이 어제보다 더 뚝 떨어졌다.
뉴스에서 보니 설악산 대청봉이 영하 9.5도라 한다.
너무 추워서 침낭을 둘러쓰고 일출을 기다렸다.
구름이 바다위에 낮게 깔려서
해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치기 시작했다.
바람에 산 안쪽으로 불었으면
멋진 운해가 깔렸을텐데
산 근처는 너무나 투명하다.
구름산이 불타오른다.
산불이 번지듯 구름불이 번지고 있다.
또 다른 묘미가 있는 일출이다.
올라오자 마자 다 커버린 태양
유치원생 그림처럼
햇살이 퍼져나간다.
해가 뜨고서도 바람이 더 차가워졌다.
다시 비비색에 들어갈것인가? 밥을 먹을것인가?
저 바위가 에일리언 바윈가요?
일출을 봤던 돼지바위가 보인다.
내 눈에는 애벌레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봉 정상에서 보낸 하룻밤이 또 추억이 된다.
하늘에 떠 있는것 같다.
세존봉, 1725봉?, 공룡능선....
늘 잊어버리는 이름들
바위에 흐르는 물이 꽁꽁 얼었다.
얼음을 피해 살금살금 내려왔다.
아... 무서워
겨우 소나무를 밟으며 균형을 잡고
한걸음 옮겨본다.
이렇게 겁이 많은
어떻게 암벽을 탔을까?
두레박으로 탔다...
그림자 놀이를 해본다.
네가 나니? 내가 너니?
어제밤 잤던 서봉이 저쪽인가요?
하산하면서 다시 전망바위에 올라 잔곳을 확인했다.
올라 갈 때 보다 내려 갈 때
속도는 빠른데 무릎은 힘들어한다.
이틀새 계곡물이 조금 줄어 들었다.
10월15일에 어둠속에서 본 하얀 용의 실체다.
소리는 여전히 우렁차다.
다시 등산화와 양말을 걷고 계곡물을 건넜다.
영하의 날씨라 계곡물이 얼음물 처럼 차갑다.
10월15일 ~ 10월 17일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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