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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좌표/ 일반통행로

책 혹은 독서에 관하여

by 소연(素淵) 2012. 10. 10.

메나르의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비교해보면 이것은 확연히 드러난다. 가령 세르반테스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진리의 어머니는 역사이자 시간의 적이며, 행위의 창고이자 과거의 증인이며, 현재에 대한 표본이자 조언자고, 미래에 대한 상담자다."(<돈키호테>1부, 9장) '재치 넘치는 평민'인 세르반테스가 17세기에 쓴 이런 열거들은 역사에 대한 단순한 수사학적 찬양에 불과하다 반면에 메나르는 이렇게 적는다 " 진리의 어머니는 역사이자 시간의 적이며, 행위들의 참고이자 과거의 증인이며, 현재에 대한 표본이자 조언자고, 미래에 대한 상담자다." 역사는 진리의 어머니다. 이런 생각은 어마어마하게 놀라운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와 동시대 사람인 메나르는 역사를 현실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현실의 기원으로 정의한다.

-보르헤스<픽션들>

 

도대체가 이게 무슨 말인가?

한참을 읽어보고...또 읽어보고... 다시 읽어보니

보르헤스의 <픽션들> 중의 하나다.

 

똑 같은 글인데, 동기가 다르다. - 시간이 다르다.

세르반테의 역사에 대한 말은 수사학적 찬양이고 메나르의 역사에 대한 말은 놀라운 생각이라 라고? ^^*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말이란 처음 한사람에 방점을 더 찍어줘야 하는것은 또 맞다.

물론 그런뜻으로 보르헤스가 말한것은 전혀 아니다.

 

글뿐만 아니고 말, 그리고 맴도는 생각조차도

언제나 시간과 경험에 따라 다르다.

 

살아있는 텍스트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해볼수 있지만 아직도

딱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이런 덜 떨어진 감이라니 답답한 기분이든다.

 

 

아,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매춘부와 같은책

 

1. 책과 매춘부는 침대로 끌어들일 수 있다.

2. 책과 매춘부는 시간을 직도한다, 그들은 밤을 낮처럼, 낮을 밤처럼 만든다.

3. 겉모습만 보아서는 책과 매춘부에게 있어서 1분 1초가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좀더 가까운 관계에 놓이게 되면 그때서야 비로서 이 둘이 얼마나 서두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몰입하고 있는 동안에 그들도 또한 시간을 잰다.

4. 책과 매춘부는 예로부터 서로 불행한 사랑을 나누었다.

5. 책과 매춘부 : 양자에게는 각각 이들을 갈취하고 괴롭히는 남자들이 달라붙어 있다. 책에는 비평가들이.

6. 공공장소에 있는 책과 매춘부 : 학생용

7. 책과 매춘부 : 이들의 최후를 이전 소유자가 지켜보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책과 매춘부도 죽기 전에 모습을 감추기 십상이다.

8. 책과 매춘부는 어떻게 해서 지금의 자신들이 되었는지 거짓으로 꾸며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실제로 그들 자신조차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몇 년씩이나 사랑 때문에 이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쫗아다니지만 어느 날 그저 '인생을 연구하기 위해'얼쩡거렸던 곳에서 비만한 몸이 되어 손님을 기다리고 서 있는 이들을 보게 된다.

9. 책과 매춘부는 자신을 전시할 때 등을 내 보이기를 좋아한다.

10. 책과 매춘부는 많은 사람들을 젊게 만들어 준다.

11. 책과 매춘부: "신앙심 깊은 노파도 젊었을 때는 매춘부. "  지금 젊은이들의 필독서가 되어있는 책 중 얼마나 많은것이 과거에 악평을 받았던가!

12. 책과 매춘부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말다툼을 한다.

13. 책과 매춘부: 전자에서의 각주가 후자에서는 양말 속의 돈.

[13번지]

 

 

벤야민에게서의 책은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이 아니라

책을 사기전의 유혹자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책을 돈을 주고 사는 대상으로 바로본다.

책을 샀던 느낌으로 돌아가 보면 더 이해가 되고

저자가 된다면 책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더 절실하다.

 

전업작가의 길을 걸었던 벤야민이 느낄수 있는 절실함..

경험한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이 된다.

 

은유와 비유의 매력을 한껏 발휘하는데 그럼 매춘부의 반대는 부인?

책이 부인이라면?

부인은 종교서 정도 될까?

 

아! 영원히 함께 할수 없는 매춘부와 같은책

읽어볼수록 점점 새롭다.

벤야민은 이 부분을 얼마의 시간으로 완성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저자의 동기는 마지막에 온다. 처음에는 결정되지 않는다.

어쩌면 저자의 말은 일종의 강요된 동기아닐까?

" 왜 이글을 썼어요?" 인터뷰 할때 나오면 동기는 강제된다.

결국 동기는 제일 나중에 오게 된다.

 

작가가 글을 쓰는 순서는

책 순서와 다른듯 하다.

본문, 에필로그, 프롤로그. 머릿말

이 중 머릿말은 조사와 리듬까지를 포함한다.

매력있는 머릿말을 만들어야 한다.

 

동기, 결과 책임은 이미 사건이 아루어지고 났을때

즉 사태가 끝났을대 온다.

결코 처음 의도 했던 동기대로 살거나 마무리 되지 않는다.

 

첫 문장의 중요성

글은 속도와 리듬이 있다

그 스타일은 악보와 같다.

 

주석과 번역이 텍스트와 맺고 있는 관계는 양식과 모방이 자연과 맺고 있는 관계와 동일하다. 즉 동일한 현상을 상이한 관찰 방법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주석과 번역은 성스러운 텍스트의 나무에게는 영원히 살랑거리는 나뭇잎에 불과하며 세속적인 텍스트의 나무에게는 제대로 익어 떨어지는 과실이다.

[알리는 말씀 : 우리 모두 산림을 보호합시다 ]

 

 

 

성스런 텍스트 - 나무 -  독자가 성장할때 까지 기다린다. 성장과 함께 자라난다.

주석/번역 - 살랑거리는 나뭇잎

세속적인 텍스트 - 과실 - 나이에 맞는 낮은 과일 처럼 딸수 있다 - 유행을 따라간다.

 

나에게 성스런 텍스트는 무엇일까?

떠오른 책은 [조화로운 삶] 스코트, 헬렌 니어링 부부의 삶이야기이다.

레미제라블도 반복해서 읽은 책 중의 하나이다.

 

 

 걸어가느냐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위를 날아가느냐에 따라 시골길이 발휘하는 힘은 전혀 달라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텍스트도 그것을 읽느냐 아니면 베겨 쓰느냐에 따라 발휘하는 힘이 전혀 다르다. 비행기로 여행하는 사람은 오직 길들이 풍경 속을 뜷고 나가는 모습만을 볼 뿐으로 그의 눈에길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지세와 동일한 법칙을 따라 펼쳐진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만이 길의 지배력을 알며,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에게는 그저 쭉 펼쳐져 있는 평야에 불과한 지형들로부터 마치 병사들을 전선에 배치하는 지휘관의 호령처럼 원경들, 전망대, 숲 속의 공터, 굽이굽이 길목마다 펼쳐지는  멋진 조망을 불러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베껴 쓴 텍스트만이 그것에 몰두한 사람의 영혼에 명령할 수 있는 반면 단순한 독자는 자기 내면의 새로운 광경들, 계속 다시 빽빽해지는 내면의 원시림들 사이로 나 있는 길을 결코 찾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저 읽기만 하는 사람은 몽상의 자유로운 하늘을 떠돌며 자아의 움직임에 따르지만 베껴 적은 사람은 그러한 움직임에 방향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서적 필사 전통은 문예 문화에 있어 어느것에도 비할수 없는 보증이였으며, 사본은 중국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이다.

[중국 도자기 공예품]

 

 

 

책을 읽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

그저 단순하게 읽지 말고 작가의 의도를 간파해 보자

필요하다면 필사해보면서 빨리 읽지 말자.

직접 걷은 등산가처럼 입체적으로 읽어보자

글을 읽는 속도와 리듬을 기억하면서...

횡간에 나오는 규정하는 형용사 그 하나에 집중하지 말고 총체적으로 읽는다.

 

반복해서 읽었는데

그보다는 필사의 개념으로 읽어봐야 겠다.

혼자 방안에 있을때는 연극하듯이 읽어가기도 하는데

조급하게 책을 읽으면 결국 의식이 제자리 걸음이란걸 느끼는 경우다.

 

 

참고서적 -  우발성의 인문학 - 알튀세르 - 첫문장이 압도적 - 비가온다.

                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 - 김상환

                김상봉 교수의 책들 - 학벌사회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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