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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좌표/ 일반통행로

벤야민과 라시스

by 소연(素淵) 2012. 10. 8.

 

벤야민을 만든 여자, 라시스

 

 

- 이 거리 이름은

아샤 라시스가

이 길을 저자 안에서

엔지니어로서

개척한 사람의 이름을 기리며 -

 

- 사랑받는 사람 뒤에서는 가족의 심연과 마차가지로 성의 심연도 닫힌다 -

 

-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 속에서 영원한 고향을 추구한다.

그러나 아주 소수이지만 영원한 여행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멜랑콜리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어머니 대지와의 접촉을 싫어한다. 그들은 향수를 멀리 떼어놓을수 없는 사람을 추구한다.

그들은 바로 그런 사람에게 충실하다.-

 

 

 

 

 

벤야민에게 라시스는 자신을 어른으로 만들어준 여성일지도 모른다.

열정적 마르크스 주의자 였던 그녀는 벤야민에게 마르크스의 정신을 불어 넣어주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 애인이 좋아하는 것을 싫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라시스에게 향했던 그의 길은 결국 마르크스주의로 이르는 길이었기도 했다.

벤야민이 민족주의에 갇히지 않고 인류사적으로 사유하는 법을 그녀로 부터 배운것이다.

 

라시스로의 길이 일방통행로인 것 처럼 마르크스주의로의 길도 이제 벤야민이 걸어가야 할 일방통행로가 된 셈이다.

 

 

라시스를 떠나보내며

그는 멜랑콜리 즉 도달하지 못한 이상을 가질때

우울적 기질에 대해 스스로를 위안한다.

결국 벤야민은 그녀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며

그녀와의 결별의식을 혼자서 조용히 진행한다.

 

- 내가 아는 사람중에 정신이 산만한 여자가 있다. 나는 자주 드나드는 상인들의 이름이라든지,

서류보관 장소라든지, 친구와 지인들의 주소, 데이트 시간등을 훤히 알고 있는 반면,

그녀의 머릿속은 온갖 정치적 개념, 당의 슬로건들, 성명서 , 명령 등으로 꽉 차 있다.

그녀는 슬로건들의 도시, 공모와 동지애를 표현하는 용어들이 구역에 거주하고 잇다.

거기서는 모든 골목길이 자신만의 정치색을 드러내며 모든말이 그것에 공명하려면 갖추어야할 암호를 갖고 있다. -

 

- 추억은 항상 애인을 더 작게 축소시킨다. -

 

애인을 이야기 한다는 것,  그리고 추억한다는 것은 애인과 거리를 두는 행위일 수 밖에 없다.

벤야민은 마침내 라시스를 " 정신이 산만한 여자" 축소하는데 성공한다. 심미적인 섬세함을 결여한 채로

오직 정치적 구호에사로잡힌 여자로 기억하려는 벤야민의 노력이 애틋하기만 하다.

아아아~~~

 

 

내가 가진것을 주는것이 사랑의 경험

사랑은 결국 소유의 반대 개념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기 때문에 소유 원리와는 함께 갈수 없다.

 

그런데

 

사랑하면 그 사람의 모든것을 다 마음과 몸까지도 갖고 싶어하는 것이

맨처음 느끼는 것 아닐까?

사랑하므로 자유롭게 해주는것...

그것은 이미 사랑의 완성을 말하므로

범인이 다가설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이상일뿐인가?

 

나의 기질은

 

노스텔지어 인가? -- 고향, 향수

멜랑콜리 인가? -- 유랑, 여행

 

나는 나는?

노스텔지어를 꿈꾸면서

 멜랑콜리가 되고 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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