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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좌표/ 일반통행로

궁핍한 시대에 대한 성찰

by 소연(素淵) 2012. 10. 8.

 

 

참으로 오랜만에

온몸이 공중으로 날랐다가

철퍼덕...

 

강의들으러 가는 길에 DMC역 앞 보도 블럭의 파인 부분을 통과하지 못하고

몸이 부서지는 아픔을 느꼈다.

불행중 다행으로 긴팔 등산자켓을 입었는데도

얼마나 강도 높게 튀어 올랐는지

옷을 통과하고 유혈이 베어나온다.

 

[강의를 마치고 밤 11시가 넘에 집에 도착했는데...

여전히 피가 흐른다.]

 

 

욱신거리는 팔에 편의점에서 산 대일밴드를 덕지 덕지 연결해서 몇개를 붙이고

강의에 열중한다.

하필...

궁핍한 시대에 대한 우울한 강의를 듣는데

팔에 상처까지 울린다.

 

도시의 자본주의 - 화려한 모습으로 대도시에 나타난다

돈벌고 쓰고... 돈벌고 쓰고...

이건 지금의 내 모습아닌가? 돈벌고 쓰고 돈벌고 쓰고....

이 상황, 문제점을 제대로 분석한다면 감당하기 힘들어

그냥 자본주의에 길들여 지는 건가?

있는 그대로 단절해야 하는데

자꾸 조그만 장점이라도 찾아 내서 위안을 삼을려고 한다.

 

역은 도시의 끝이다.

노숙자는 도시의 끝에 모인다.

서울역에 영등포 역에 각 도시의 역에

비록 역은 서울 중심에 있지만

도시를 떠날수 있는 곳...

그러므로 도시의 끝이다.

이곳에 모이는 노숙자의 터럭 끝만한 심정이 지금 이순간은 느껴진다.

 

20세기 벤야민의 베를린의 풍경에서 19세기의 보들레르의 파리가 보이고

21세기 현재의 서울이 나타난다.

여전히 똑 같은 고민 ... 한세트의 블록처럼 대도시의 상처가 보인다.

 

강의도중

" 왜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냐? 상처는 내 놔야 아문다

숨기지 말라?"

윽... 내 팔을 볼리는 없는데?

 

자본주의 상처인데 ^^* 상처를 복원하려는 사람이 성숙하다 모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그만 내 팔의 반창고랑 우연히 겹쳤다.

 

" 가난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세상은 가난한 사람을 수치스럽게 만든다. 그렇게 만들면서 알량한 금언으로 그들을 위로한다.

이 금언은 과거에 한때 통용되다가 이미 오래전에 변질되어버린 금언 중의 하나이다.

그런점에서 "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는 잔혹한 금언과 하등 다를 게 없다. 흉작 등의 불운에 의해 어쩔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경우가 그러했다. 하지만 수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굶주리게 만들고 수십만의 사람들을 점점  더 가난 속으로 옭아매고 있는 현재 빈곤하는 사람들의 수치스럽게 만들고 있다.

[독일 인플레이션 일주 여행] 중

 

 

획일화된 구조화로 나열하며

순위를 매기고 구조적 부끄러움을 나의 부끄러움으로 만든다.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은

노력이 부족하므로

게을러서 경쟁 스펙을 갖지 못해서

 고로 너의 잘못?   .... 재벌은 당당하다.

 

수치라는 논리 구조에 갇히면 깨알간이 부서진다.

편협한 이익을 추구하는 부르조아 체재에 갇히고 만다.

우둔하면서 직관도 없어지고

 

경쟁스펙이 독약인줄 알고서는 먹지 못한다.

그냥 막연히 독약일까? 먹는? 먹을수 있는...

그치만 정말 독약인줄 알면서 먹을수 먹일수 있을까?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은 ?

 

대화를 잃어버린 우리다.

우리를 깨알처럼 파편화 시켜서 조각내는 것은

경쟁, 선착순 사회이다

이 조각난 파편들을 모으는 방법은

이기는 방법은

연대하여 선착순의 부조리를 깨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이분화를 더 시키고 만다.

초연한 태도로 세상과 거리두기만으로

그냥 냉정하게 사실을 보지 않고 딴생각을 한다

이건 대책없는 멍때리기 일뿐이다.

일탈하면서 해결될수 있는 일이 아닌것이다.

 

결국 부르조아의 삶의 체계는 깨알같은 사사로운 일들로 구성

파편화 시켜 분열시켜서

결국 퍼즐조각처럼 맞추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진실 " 괴물"의 실체를 느끼지도 볼수도 없게 만든다.

 

반자본주의적 인간

자유로운 사람은 모두 기인으로 보인다.

그냥 자기만의 꽃을 피울뿐인데

 

 

모든 사람들의 자기만의 꽃을  피우지 못할때 저항한다.

결국 세상이 모두를 장미로 만들려고 오리고 부풀릴때

먼저 느끼는 사람이 저항한다.

시인이 저항하고 문학이  저항한다.

 

자유로운 영혼이 획일화에 저항하고 답답해한다.

결국 인문학의 정치이념은 민주주의

독재를 빨리 깨닫는다.

검열을 받아드린 순간 인문학은 죽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엄경의 세계

다양하게 온갖 꽃이 피는 것 -- 인문학의 꿈

 

며칠전  송호창 교수의 " 같이살자" 북 콘서트에 갔을때 하신 말씀

소나무 재선충은  꼭 소나무끼리만 모여있는 곳에서

전염이 된다. 다양한 종의 나무가 모인곳에서는 소나무 재선충의 감염행진은 없다.

 

결국 이 뜻이다.... 화엄의 세계

내글을 쓰기위한 배우기 역시

화엄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자유로운 개인 공동체를 생각해본다.

 

혼자서 산을 갈때

자유로울것 같지만

사실은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여러가지 생각할게 많아진다.

준비할것도 많고

부상과 조난에 대한 위험도 배로 많아진다.

함께 가면서도 영혼은 자유로울수 있는 공동체...

 

내가 또 한발짝 나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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