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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책방/茶茶茶

03년 황대익을 벗하며

by 소연(素淵) 2009. 8. 30.

인삼, 황기, 대추, 마늘을 넣고 은근한 불에 2시간을 푹고은 백숙에 서울막걸리 한병을 나누어 마시니 갑자기 집안이 무릉도원으로 변화를 한다. (어제도 가까운 수리산에서 족발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시다 낮술에 취해 한밤에 일어나더니 오늘도 또 막걸리를 정오에 마시고 말았다.) 그대로 잘것인가? 깨어나 일어날것이냐? 를 망설이다 찻장문을 열어본다.

조고르던 손에  올봄에 사두었던 03년 황대익이 손에 잡힌다. 사놓고 시음한 후 처음으로 다시 마셔보는데 한여름 더위와 장마를 통해 얼마나 성숙해졌을까? 기대가 된다.

 일단 거실바닥에서 개봉을 해본다. 오랜만에 개봉해서인지 차향이 진하게 풍겨온다.

 술마시다 왠 카메라를 들고 수선이냐는 술친구를 바라보면서 한컷 찍어본다. 

 기름기가 자르르~~윤이 나면서 조금씩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엽저가 눈에 보인다. 깊은 숨을 들이쉬고 차에다 내 뿜고 다시 킁킁 차향을 맡아본다. 후~~~~~~ 흠~~~~

 전에는 차 한편을 사면 우지끈 뚝 부러뜨려 먹었는데 이제는 양옆을 살살 치면서 조금씩 떼어내며먹는다.  매번 찻자리에 단골로 뽑히면 이쁜 자사호 항아리에 들어가서 안방으로 들어온다. 안방에 들어온 차는 금방 차 향만 남기고 세상에서 사라진다. 손이가요 손이가요~~~ 자주 접하는 차는 그만큼 생도 짧다. 아직은 03년 황대익이 매번 내 찻자리에 올라오기는 이르다. 진한차를 좋아해서 옆에 가까이 있으면 자주손이가고 그러면 위장에 무리가 갈것 같아서 진기 10년이 넘지 않는 차는 다 찾장에 보관중이다.

 내 찻상은 안방 침대와 연결되있다. 문화인일수록 잠자리와 거실, 식당, 서재등이 다 따로 되있다던데 아직도 난 혼돈의 세계에 머물어 있다.

차를 마시다 손을 내밀면 책상이요, 도서관이요, 누우면 침대위이니...(꿀꿀이냐고 가끔 비웃는...)

 차가 제대로 익어 맛이 들어야 안방에 자리를 차지하듯, 안방에 들어와있는 책들은 한달동안 내마음속에 함께 있는 내용들이여야 한다.

욕심에 미리 사두고 차례를 기다리는 책들도 좁은 거실책장에 대기하고 있고 그나마 책장을 살피다가 과감한 내손에 잡혀 재활용으로 생을 마감하는 책들도 종종 많이 있다.

이렇게 주절거리다 보니 차와 책의 주인인 내가 마치 절대 권력자가 된듯... 별 폼을 잡고 있는듯 해서 갑자기 실실 웃음이 나온다. 갑자기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라는 살바도르 달리가 떠오른다. 가장 위대한 창조자는 나?

 3년넘게 사용하던 넓은 대나무 차판을 잠시 휴식시키고 새로 들여온 꽃 차판이다.  잘못보면 꼭 삼겹살 로스돌판구이처럼 보이기도 하다.

직경 20cm정도의 아담한 사이즈이지만 찻물을 받고 버리는 솜씨는 대단하다.

찻상밑에 이런 20리터 짜리 물통을 하나 놓고 차를 마시면 한주 동안 물버리려 일어나는 일이 없다(게으름의 천국)

 차차를 우려 2번 세차한 물이다. 오늘은 좀 진하게 마시고 싶어서인지  세차물도 진하다. 이물은 뒷쪽 금섬 차지이다.

 차를 마실때 처음에는 첫탕은 무슨맛이고, 둘째탕은 무슨맛이고... 등등 열심히 기록도 하고 음미도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큰 숙우에 첫탕, 둘째탕, 세째 탕까지 한꺼번에 모아서 마신다. 자사호에 물붓고 구경하기도 좋아하지만 책이랑 같이 하는 차 마시기는 미리 차를 많이 우려놓아야 편하다.

 커다란 숙우에 앙증스런 분채찻잔을 파트너로 삼는다.

03년 황대익은 진한 맛과  부드러운 맛이 같이 느껴진다. 알싸한 쓴맛과 함께 혀안에 고루퍼지는 단맛은 오랫동안 입안에 여운을 남긴다. 강한 차기운 역시 세잔 정도를 마시면 온몸에 따스한 나른함을 준다.  가볍지 않는  진한 맛, 그러면서도 자꾸만 마시게 되는 부드러운 기분을 이차는 준다. 얼마전 05년 이무차순호를 마신적이 있었는데 그 차가 주는 느낌도 이러했다. 깊고 그윽한 맛....이런차가 지름신을 부르기도 하지만 역시 지름신에게 감사하게 만들기도 한다.

 "차를 왜 마시는가?" 차를 가까이 하다보니 스스로 또는 지인들에게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다.

지금 내가 느낄수 있는 이 기분... 바로 이 기분 때문에 마시는데 어떻게 표현을 해야할까?

 차를 마실때의 나는 평화롭다. 마음이 여유롭다, 또한 정신이 자유롭다. 마음껏 상상하고 마음껏 누린다.

차 없이 그냥 독서 삼매경에 빠질때 보다 차 한잔을 옆에 둔채 책을 읽을때 더 깊은 감동을 느낀다.

현대인에게 부족한 休를 주는게 茶가아닐까? 나에게는 꿈다가 아니라 휴다이다.ㅋㅋ

 가끔 차를 마시다 출렁거리는 침대위에다 무심코 올려 놓고 움직이다 침대에게도 차 한잔을 줄때가  있다.

 하나 둘씩 모아가면서 꾸려가는 차살림은 나에게 은근한 기쁨을 준다. 명품가방을 사고 브랜드옷을 사서 매년 퇴색해가는 모습을 보는것이 아니고 조금씩 익어가는 차향속에서 또 점점 차와 함께 하나가 되어가는 자사호들의 모습에서 든든한 반려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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