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태극 종주를 하다니 꿈만 같았다.
10월2일 밤 9시부터 10월 7일까지 5박6일 일정을 계획했다.
설태를 위해서 산악 운동을 하느라 러너 종주팀에서 속도에 죽고, 비탐길에서 낙석과 바람에 죽을 뻔 했었다.
6월부터 준비해 온 설악태극 종주는 내게는 우여곡절이 있었고 갖은 천신만고 끝에 비로소 시작됐다.
몇번이나 설태 지도를 보면서 등로를 되뇌였다.
10월2일 수요일밤 자정에 주차장박을 했다.
비가 제법 많이 새벽에 내렸다. 종주 첫날부터 비가 내리다니 왠지 마음이 서늘했다.
원래 아니오니골로 오르려 했으나 비가 와서 안전한 12선녀탕 계곡으로 향했다.
태풍 끄라톤의 영향으로 지난주에 비가 내려서 수량이 풍부하다.
남교리 탐방지원센터에 출발을 했다.
12선녀탕 계곡은 12개의 암반 웅덩이와 12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있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응봉 폭포는 낙차가 커서 소리가 우렁찼다.
산행 첫날이라 그런지 오르막 길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이런 비단길을 걷다니 기분이 좋을 뿐이다.
12선녀탕 중 복숭아 탕이다.
소 천체의 모습이 복숭아 모양이다.
물의 힘이 대단하다, 수천년을 흘러내려 바위를 부드럽게 깎아 조각을 했다.
정말 아름답고 신비로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가 12개가 있다는데 그 수를 다 헤아려보질 못했다.
아름다운 계곡 물소리를 들으면서 걸어가니 힘든 줄도 시간가는 줄도 모르겠다.
여기서부터 1.4km 오르면 안산이다.
안산을 올라가고 싶었지만 다들 힘들어 해서 못가서 아쉬웠다.
산은 늘 그자리에 있으니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지.
종주 첫날은 일찍 산행을 마치고 대승령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안개가 주변을 에워쌌다.
헤리티지 텐트 1인용은 200*75*95 이다. 무게는 540g이다.
아주 작은 공간에 설치가 가능했다. 무게도 장점이지만 폭이 좁아서 박지에 구애가 별로 없다.
피곤해서 저녁을 일찍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텐트 안이 화폭이 되었다.
여명이 아름답다.
새벽부터 일어나 텐트를 걷고 산행 준비를 했다.
지난밤에 비가 꽤 내렸다.
타프에 떨어지는 빗 방울 소리가 환상이였다.
푹 젖은 텐트를 패킹하는 마음도 젖었다.
더 무겁네
대승령에서 귀때기청봉까지는 6킬로 정도라는데 함께 하신 분들이 정말 힘들어 했다.
산행속도가 나질 않는다. 그래서 여유가 생겨서 충분히 즐기며 걸었다.
운해가 멀리 넘실대고 있다.
큰 참나무가 속이 텅 비어있는데도 푸르르다.
나무는 참 신비롭다.
멀리 주걱봉이 보인다.
돌에 누워 느긋하게 낮잠이라도 자고 싶은 날이다.
귀여운 얼굴형태의 바위다.
조금 충격을 줘도 굴러 떨어질것 만 같다.
사람의 뇌는 평소에 보았던 이미지에 비슷한 모습을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형태를 보면서도 각기 다른 형상을 보게된다
1408봉을 내려오다가 뒤따라오는 일행을 찍었다.
그쪽에서 찍은 산속에 있는 내 모습이 참 좋다
봉우리는 올라가면 내려온다.
저 멀리 귀때기 청봉이 보인다.
한계령이 아닌 서북능선으로 귀때기 청봉을 오르기는 처음이다.
누군가 세워 놓은 비석이다. 희미해서 글씨가 잘 안보였다.
너덜길이 시작되었다.
금강산?, 장가계?
설악산 바위 아름다움이 빼어나다.
너덜길 위에 있는 설악 봉우리가 신비롭게 느껴진다.
언제 이렇게 부서졌을까?
바로 눈 앞에 귀때기청봉을 두고 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안부에서 점심을 먹고, 상투바위골에서 물을 길러오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오늘 백운곡까지 가기로 했는데 불가능 할 것 같아서 귀때기청봉 정상에서 의논하기로 했다.
몇 걸음만 더 가면 되는데 다들 지쳤다.
우와아~~~~ 귀때기청봉이다.
이제 곧 해도 저물텐데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좀 늦게 텐트를 치기로 해서 여유로운 그림자 놀이를 했다.
나 찾아봐라~~~
중청과 대청이 보이고 봉정암도 보였다.
아~~~
아름다워라. 산그리메
깊은 한숨이 나오는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운 산그리메를 바라보며 일몰을 기다렸다.
우모를 입은 모습이 거인 같다.
산위에 서다.
봉정암과 속초 바다, 소청 대피소 불빛이 보인다.
일찍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물이 부족해서 국 없이 생선구이를 맛있게 먹었다.
공용식수를 내고 나니 100ml 물만 있어서 50ml는 양치를 하고 50ml는 맛나게 마셨다.
다음날 백운곡 내려갈 때 까지 긴 갈증 속에 있었다.
새벽에 눈을 뜨니 텐트안에 얼음이 얼어 붙어 있다.
밤새 바람도 세차게 불고 영하로 온도가 떨어졌고
물이 없어서 날진병도 끌어안지 못했지만 다행히 크게 춥지는 않았다.
여름 침낭이였지만, 침낭커버가 생각보다 보온효과가 있었다.
새벽 4시10분부터 귀때기청봉을 내려왔다.
어두운 밤 조심 조심스럽다.
오리온 별자리가 새벽 하늘에 빛나고 있다.
일출이 시작되고 있다.
한계령 삼거리에 내려오니 날이 완전히 밝아왔다.
여기서 대청을 올라 가야 하는데 태극종주와는 멀어지면서 가야동 계곡으로 하산 하기로 했다.
오르락 내리락 등산객들의 불빛이 얽힌다.
한계령 삼거리에서 곡백운으로 내려오는 길이 많이 미끄럽고 돌이 움직여서 힘이 들었다.
곡백운 제단곡이다.
다랭이 논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소금계단처럼 보이기도 한다.
2022년 이곳에 온 뒤로 다시 오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다시 이곳을 오다니 가슴이 뛴다.
넘 좋다. 다시 이곳에 오다니~~~~
제단곡에서 곡백운 폭포 내려가는 길이 생각이 난다.
2년전 7월경이였나. 비가 많이 내린 뒤 미끌미끌한 이 길을
한바그 비브람창 등산화를 신고와서 몇번을 미끄러져서 물속으로 떨어질뻔했었다.
이 날 이후로 물바위를 만나면 극심한 두려움이 생겼다.
계곡 물소리가 요란할 즈음에 표고를 발견했다.
푸하핫~!~
제단곡 사진을 찍다가 들깨 미역국을 못먹었다.
잠깐 사이에 배식이 끝나서다. 마른 밥을 먹느라 힘들었다.
이날 미역국 못 먹은 것은 오랫동안 생각날 것 같다.
배식 담당자가 너무 매정하게 느껴져서 나는 좀더 친절한 사람이 되야겠다.
이런 생각을 잠시 했었다.
이 휴식이 끝나고 나면 저 아래 폭포길을 내려가야 한다.
이 순간을 즐기자.
바위가 시원하기도 하고 따끈하기도 하다.
조심조심
오늘은 릿지창 등산화라 미끄럽지 않아서 쉽게 미끄러운 사면길을 걸었다.
전에 비명을 지르며 몇번 미끄러지면서 걸었던 길이였다.
생각이 난다.
몇년 사이에 나무들이 많이 쓰러져 있어서 내려오기가 더 힘들어졌다.
미끌미끌해진 나무를 조심해야 한다.
우와아~~~ 이제 최대 난코스 지났다.
곡백운 폭포를 내려오는 길은 참 무섭다.
곡백운 계곡길 트라우마에서 조금 벗어났다.
여전히 미끄럽고 조심스러웠지만 오늘은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왔다.
여전히 조심스러운 길이다.
점심 먹기전에 그림자 놀이를 했다.
움직이는 돌을 밟았다.
크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으악~~~ 너무 아프다
걸을 때 마다 온 엉덩이가 다 아프다.
미끄럽고 어지럽게 쌓인 거친 바위를 걸어 내려가는게 많이 힘들었다.
3일째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었더니 다리에 힘이 빠졌다.
움직이는 돌을 밟았다가 심하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또 한번은 움직이는 돌에 앞으로 엎어져서 팔꿈치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보통은 움직이는 돌에도 잘 넘어지지 않는데 힘이 빠졌나보다.
백운동계곡, 수렴동 계곡 그리고 가야동 계곡으로 스며들었다.
낙석 조심 조심 조심
가파른 옥녀봉 능선길을 넘어섰다.
아름다운 계곡도 이제는 건너야할 난코스가 되었다.
아이고 엉덩이 뼈야
나 죽을것 같오....
오매불망 가야동 박지를 향해서 걷고 또 걸었다
후덜덜 엉덩이에 힘을 못주니 영 다리가 안 나간다.
드디어 꿈을 이뤘다.
2년전 여기서 잘때는 비비색을 가져와서 멋진 텐풍을 찍을수 없었다.
비좁은 바윗길에 작은 텐트를 들이밀었다.
경사진 자리라 편하지는 않아도 하룻밤 불편함을 참을 수 있다.
꼭 이곳에 텐트를 치고 싶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망경대라 한다.
설악태극종주 음식 지원을 위해서 산우들이 미리 와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이다. 그날 걸레봉에 있었던 산우들이다.
능이버섯 차를 실컷 마셨다.
자다가 일어나 물빛에 흔들리는 텐트를 찍어 본다.
어제 술이 과해서 몸이 무겁다.
퉁퉁 부은 느낌이다.
늦은 밤까지 마지막 셋이 남아서 세금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어제 하고 싶었던 말이 남는다.
그래서 전에는 세금 안냈냐고?
그냥 경이 만나서 거품이나 빼야 겠다.
멋진 사진을 남기고 싶은데 얼굴이 퉁퉁 부었다.
눈뜨기도 힘들다 ㅋㅋ
힘들게 이쪽 으로 배낭 메고 넘어 왔는데 다시 내려가야 하다니
아이고 ...
가야동 계곡을 일찍 떠나기가 아쉽다.
오늘 오후부터 태풍 끄라톤 영향으로 황철봉쪽에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하산하기로 했다.
아쉽기도 하지만 다행이다 싶다.
엉덩이가 여전히 끊어질듯 아프다.
요즘 부상이 끊이질 않는다.
이제까지는 계속 선약이라는 핑게로 힘든 산행을 계속 했는데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려야 겠다.
산길과 계곡길을 번갈아 가며 가야동계곡을 내려왔다.
20년 전에 용아장성을 가기위해 걸었던 옥녀봉 능선길이다.
숨소리도 죽이며 살포시 내려왔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비탐길과 정탐길이 만나는 순간은 짜릿하다.
이제 수렴동 계곡을 스르륵 스르륵 내려간다.
아직까지도 1시간 30분이나 남았다고라...
후들후들 걷는다.
좁은 텐트안에서 꼬박 4일 밤을 잤다.
손가락까지 부은 느낌이다.
언능 집에가서 쉬고 싶다. ㅎㅎ
설악태극종주 9인 나한봉팀 7인이 모여서 내려왔다.
16명이 함께 하는 비박은 처음이다.
초록색, 빨간색, 보라색, 분홍색 네임팬으로 지난 4박5일 동안 걸었던 길을 그려본다.
설악이 한눈에그려진다.
혼자서는 엄두도 내지 못 할 설악 비박이였다.
좋은 경험이였다.
그래도 하루 꼬박 10킬로 씩은 걸었다.
다행히 X-ray 검사 결과상 꼬리뼈 골절은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야 할 아픔이다.
4박5일 일정이라 7일 월요일까지 휴가를 냈다.
모처럼 아무것도 안하고 오직 피로를 푸는데 하루를 썼다.
소금 찜질방이다.
소설가 한강님이 노벨상 수상 작가가 되었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다 읽으면서 눈물과 한숨, 그리고 아픔으로 읽기 힘들었던 소설이였다.
특히나 제주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서는 다시는 한강의 소설 읽기가 두려웠었다.
한강의 시를 읽어야 겠다.
기분 좋다.
아주 좋다.
너무 좋다.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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