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책방/山山山

곰골-걸레봉(저항봉)-길골-백담사

소연(素淵) 2024. 9. 10. 13:09

곰골 초입은 여느 계곡과 같이 물 맑은 아름다운 곳이였다.

비가 많이 내렸는지 곰골에 물이 많아서 미끄러운 구간이 많았다.

물바위에서는 릿지화도 미끄러웠다.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한발 한발에 긴장감이 감돈다.

 

곰골 계곡 끝에서 졸졸 흐리는 물로 수낭을 채웠다.

차가운 맥주로 부풀어 오른 상처부위를 찜질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나무가 쿵 하고 쓰러졌다.
소리가 들렸을까?
태어나서 처음, 물론  모든일에는 처음이란게 있다.
커다란 낙석을 맞았다.
낙석은 돌이라 생각했는데 바위였다.
경사진 산비탈에 작은 돌들이 계속 떨어져서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무등산 수박만한 돌이 아로아 대장이 있던 바로 옆으로 엄청난 속도로 굴러왔다.
아찔한 순간이였다.
겁이 났다.
계속 떨어지는 돌들을 피해 한참을 머물다가 
다시 비탈을 조심스레 오르기 시작했다.

바위돌이 머리를 칠때 묻은 흙

쿵쾅 우르르... 낙석이닷! 소리에 위를 보니 엄청난 바위가 주변 돌들을 치면서 
미친듯이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다.
내가 있던 곳 오른쪽이였다. 
작은 파편들이 몸을 때렸지만 분수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모습에 경직되어 
어느방향으로도 움직일수 없었다.
큰 바위가 구르면서 계속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정말 눈 깜짝 할새에 
번쩍 무언가 내 머릴 치고 세 발자국 뒤에 쿵하고 떨어졌다.
" 나 맞았어요 머릴 맞았어요"
그 뒤로 생각이 잠깐 멎었다.
내가 서 있었는지 앉아 있었는지 다 생각이 안나고
내 머릴 딱 때리던 그 묵직한 아픔이 온몸을 타고 내렸다.
머릴 만졌다. 차마 모자를 벗기가 두려워 모자위로 만졌는데
머리가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어릴때 부어오르면 남봉났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함몰은 아니라 다행이다.
먼저 든 생각은 믿을수 없는 행운이란 생각이였다.
내 뒤에 있는 저 바윗돌
저게 날 때리고 바로 뒤에 멈춰있다니.
그리고 난 살았다니
천우신조인가? 그냥 명랑한 웃음이 나오고
내 머리가 돌보다 강하다. 등등
그냥 멍하면서도 살았있다는 사실이 넘 신기했다.
난 죽었는데...
지금 이것은 죽기전 영혼인가?
미드 프롬이나, 로스트 처럼 죽기전 잠시 머무르른 연옥인가?
걸어가도 현실감이 없었다.

초승달은 떠오르고 
석양은 붉게 물들어 있을때
걸레봉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는 내내 한마디 말도 나오질 않았다.
다행이라고 즐겁게 웃고 술마시는 동료를 보아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 삐졌니?라는 석경의 말에
내가 삐졌냐고?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나도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일행보다 조금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

텐트밖에서 성야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칭구야  그래도 다행이야 니맘 알아
기도할께 울먹이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누워있었다.

은하수가 보이는 날
별빛이 쏟아지는 날
별똥별 하나를 보았다.
잠도 오지 않고 하늘의 별빛은 너무 곱고 은하수강은 너무 선명하여 떨리는 마음으로 하늘만 바라보았다.


산 아래 안개가 걷히고 속초 시내 야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텐트 머리를 밖으로 내밀고 있다가
밤 하늘 별을 찍었다.
아무런 기능도 없이 그냥 셔터만 눌렀는데 별이 찍혔다.
25년전 세석평전 헬기장에서 보았던 은하수와 별빛
20년전 중국 황산의 문필봉에서 보았던 은하수와 별빛
그리고 2024년 오늘 밤 
한번 죽었다.
살아난 이밤
나는 그때의 은하수와 별빛을 보았다.
밤새 여러번 고개를 내밀고
신비로운 별의 강 은하수를 보았다 오른쪽 하늘에서 왼쪽으로 점점 옮겨가는 은하수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또 별똥별 한개를 만났다. 보는 순간 황홀감으로 소원을 비는걸 맨날 까먹는다
그래도 넘 행복하다
별똥별을 보고 좋아했던 지난 날들이 떠오른다.
최근 어느날 변을 보는데 배가 많이 아프고 냄새도 지독했다.
그 전날밤 유명한 맛집에서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웠다
그런데 순간 그 맛있던 음식이 이렇게 지독한 똥이 되었구나!
아무리 행복하고 즐겁던 지난 날들도 
그 순간이 지나고 인연이 다해
찌꺼기가 돼었다면 그 추억도 이렇게 변하는 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다.
더러운 똥 생각은 그만하자!!!
별똥별이라 똥 생각이 난건가?

밤새 뒤척이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어떻게 살아있지?
자꾸만 머리를 덮치던 그 바위돌이 생각이 났다.
어떻게 머리가 깨지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을까?

 

거친 바위 표면에 헤리티지 텐트의 약한 천이 혹시나 찢기지 않을까 해서
수건이나 모자 옷 등을 텐트 밑 모서리에 깔고 잤다.
운해가 보였다.

구름 사이로 늦은 일출이 시작되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을 보는데도
멜랑꼴리한 마음은 어쩔수 없다.
빨리 하산해서 집에 가고 싶었다.

죽었다 살아난 기분이 이런걸까?
머리에 딱 맞았을때 
아스라히 일생이 지나갔다.
찰나인데 모든게 지나갔다.
이전의 나는 죽고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
이전의 나는 없다. 이런 센티멘탈한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일출을 보면서 
현실적인 생각을 하니 괴로웠다.
약한 머리를 그렇게 강타 당했는데 난 정상일까?
두개골에 깨어져 금가지 않았을까?
연한 두부 같은 머릿속이 뭉그러지지나 않았을까?
네팔은 물 건너 간걸까?
CT를 찍어야 하는데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하나?
경막하 출혈이 있으면 어떡하지?
월요일 연가를 써야 하나?
아 귀찮아
죽으면 죽는 사람은 그 순간 모든게 끝이란 생각이 들었다.
괴로움은 남는 자의 몫이란 생각이 ...
차라리 그냥 죽었으면 다 끝인데
난 또 살아서 생각을 하는구나
아무리 멈추러 해도 생각은 계속 떠올라 나를 힘들게 했다.

작은 낙석을 맞아 손목이 조금 찢긴 옵션님
" 그 많은 산행을 했지만 이런 공포의 산행은 처음이라고"  계속 중얼거린다.
낙석을 맞은 뒤로 힘이 빠진 몸을 이끌고 
걸레봉 뒤편을 위험하게 돌아 박지로 올때 까지 옆에서 함께 해서 위로가 되었다.

내 머릿속도 지금 이렇다.
빙그리 빙그리
아주 심하지 않지만 안개 낀 것처럼 흔들린다.

황철봉을 바라보며 자기가 이렇게 힘든건가?
전에도 황철봉을 바라보며 비박을 했는데 오르기 힘들었을뿐
이런 위험구간은 없었다.
지난번 선바위골에서 남황철봉 오르는 길도 정말 힘들었는데 
오늘 낙석지대에 비교한다면 비단길이다.

 

 

얇은 텐트를 보호하기에는 너무 얇은 풋 프린트였지만 지난밤 잘 견뎠다.

 

 

배낭을 다 꾸리고 하산 준비를 하면서 
어제가  위험한 산행의 마지막 날이 될것을 결심해 본다.
물론 어젠 천운으로 살았지만 그 카드는 다시 오지 않을것이다.
좋아하는 산이지만 산에서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

어제 바로 텐트옆인데도 보지 못했던 구절초를 보았다.
사방이 구절초 밭인데 꽃을 보지 못했다.
박지에 도착했을때 이미 해가 져서 어두워서 못볼걸까?

구름쇼가 펼쳐진다.
자연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걸레봉 조망을 자꾸 찍는다.

저항령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이런 길은 비단길이지
그래도 조심조심

하산을 하던중 운해의 유영을 보여준다.
아름답다.

하산하고 창바위 식당에서 뒤풀이로 비빔밥을 먹었다.
내가 키가 조금만 컸어도 난 죽었을거야
다행히 머리 끝부분만 쳤으니 살았다.
난 내가 서있는 순간 돌아 맞은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작은 낙석에 맞은걸 내가 착각하는 걸까? 이런 생각도 했었다.
근데 그래도 어떻게 그 돌이 내 바로 너머로 쿵 떨어졌는데 난 살았을까?
계속 계속 하산길에 떠올랐던 의문이였다.
어제밤 이후로 계속 따라 다녔던 의문이 비로소 풀렸다.
아로아 대장님이 밥을 먹은후 막걸리를 마시며 눈물이 글썽글썽 해졌다.
내 손을 잡고 살아줘서 고맙다, 고마워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난 생각나지 않았던 그 낙석맞은 순간을 그녀는 고스란히 보고 있었다.
갑자기 방향을 바꾼 낙석이 피할 순간도 없이 나를 덮쳤다.
그 순간 나는 미리 숨어있던  작은 바위와 작은 나무가 있던 그 곳에서 고개를 황급히 숙였다고 한다. 설악태극종주(10월6일)때
가야동에서 만났던 옵션님이 집에서 아로아대장에게 다시 들었는데 사실은 나무나 작은 바윅가 그 자리에 없었다고 했다
사실 난 아무런 방어망이 없던곳에서 그냥 순간 업드렸다는것이다 으읔
더 놀랐다
암튼 그 순간을 난 제대로 기억을 못하는것 같다
아찔할 뿐이다

바위돌이 나를 스쳤을때 난 나무를 한껏 끌어 안고 딸려 나가지 않으려고 꼭 붙잡고 있었다.
붙잡았던 나무를 뚫고 위로 튀어오르는 바위가 순간 나를 살짝 치고 튕겨서 떨어진 것이다.
바위의 하강 곡선이 위로 향해서 난 살았던 것이다.
삶과 죽음의 순간이 이렇게 찰나인가? 백지 한장 차이인가?
나를 향해 정면으로 날아온 바윗돌을 평생 잊을수 없을것 같다.
뒤 돌아 보았을때 보았던 그 큰 바위 작게 보아도
75리터 배낭 만큼이나 컷던 붉은 갈색이던 그 바위돌이
아직도 머릿속에 각인된듯 선명하게 떠오른다.

하산길에 도룡룡 두마리가 보였다.
꼭꼭 숨어라 나무가지 처럼 보인다.
길골은 길어서 길골이라 말할만큼 길었다.
시간은 더디가고 빨리 집에 가고만 싶었다.
마지막 남은 음식이 내가 준비해간 쭈꾸미 볶음이였다.
아침을 든든하게 고기를 먹어서 배도 고프지 않았다.
날씨는 덥고 머리는 묵직한 두통이 계속 되었다.
하산 마지막 구간에서  쭈꾸미를 볶을려고 의자를 펴는데
자꾸 꼬여서 접이 의자가 갈수록 더 이상해져서 펴지질 않는다.
참을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도 모르게 힘껏 땅바닥에 의자를 패대기 쳤다.
나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요~~~~
이상하게 지금까지 입맛이 없다.
겨우겨우 먹는다. 
뇌진탕 후유증이라기 보다는 그냥 기분이 좀 안좋아진것 같다.
설마 전전두엽이 다친건 아니겠지?
후유증으로 포악한 사람이 되지는 않을까? 살짝 두렵다.

아무리 피곤해도 택시를 타고 집에 가본적이 거의 없는데
걱정하는 성야 때문에 잠실부터 집까지 택시를 타고 왔다.
집에 도착하니 다예가 " 엄마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 산행 힘들었어?"
다예야 이리와봐 엄마 핸폰으로 머리 위쪽 좀 찍어줘
산행하다가 작은 돌에 맞았는데 좀 아픈것 같아
옆에 있던 재성씨가 흥분해서 " 어디 어디" 한다
아주 작은 돌인데 좀 아파서....
타이레놀 두알을 먹고 잠이 들었다.


출근했는데 에어콘이 안 나와 머릿속이 후끈거린다.
얼음 주머니로 아픈 부위를 찜질 했다.
더워서 열이 나는 건데 혹시 머릿속이 열나나? 이런 생각이 든다.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면서 동료에게 계속 주절주절 거렸다
저 큰 바위돌이 ~~~
" 그만해요 듣기도 끔찍해요 " 동료가 소리친다.
집 식구에게도 못하고
산행 동료에게도 못했던
두려운 이야기가 횡설수설 나왔다
그래 내가 왜 이러지 주책이다.
오후 진료가 걱정인가보다.

예약도 없이  신경외과가 있는 준종합 병원에 가서 마냥 기달렸다.
번호표 대로 안하고 예약한 분들 모두 진료를 보고 그 다음 순서가 나다.

머리 아픈곳만 신경 썼는데 우박처럼 쏟아지던 낙석에 온몸이 멍투성이다.
팔 다리 등 온몸에 멍이 벌집처럼 가득 들었다. 
목욕탕에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불쌍한 여자로 보였는지 할머니들이 힐끔 쳐다본다.
상 하체 모두 검 붉은 얼룩이 가득하다.

친철하신 원장님을 만났다.
걱정해주시고 공감해주셨다
엑스레이를 처음에 찍었다가   정밀하게 보자고 CT를 찍었다.
머리 CT는 조영제 주사를 맞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였다.
움직이지 말라는데 자꾸 몸이 꼬인다.
4시가 다 되어 두번째 결과 상담을 받았다
머리도 위험했지만 목 디스크가 심각한 나는 충격을 받으면 전신마비도 올수 있다고 질겁을 하셨다.
정말 위험한 순간을 피했다고 하셨다.
물론 후유증도 생길수 있지만 CT 결과에 두개골 골절이나 출혈이 보이지 않으니 
뇌진탕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몇 주 안정을 취하라고 하셨다.
경추 척수증 진료 받을 때 마다 늘 몸에 특히 목에 충격을 받으면 큰일난다고 했는데 
그동안 산에 빠져서 목 생각을 안하고 살았다.
특히나 몇 달간은 
불광불급한 마음으로 산을 다녔다.
100대 명산이니, 설악이니, 아마도 다른이가 보면 미친이처럼
등산 매니아 처럼 매니아가 미친... 뜻이니 같은거다.
쉴새 없이 다녔다.
갑자기 내가 그 동안 허해서 미쳤었구나 
그것 때문에 내가 죽을 길을 가고 있었구나 
이제야 정신이 든다.
난 2024년 9월 7일 오후 5시에 한번 죽었다.
이제 다시 태어났다.

 운동 정보도 이상하게 나왔다. 핸폰 밧데리가 나가서다.
 

아침 출근전 미쳐 빨지 못했던 모자가 보였다.
돌에 맞았을때 생긴 얼룩이 아직도 선명하다.
땀이 많이 나와서 노란 수건을 머리에 둘렀고 그위에 모자를 썼었다.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삶을 내게 주었다.

이 모습을 보기위해 목숨을 걸었나?

점심시간 산책을 하면서 바위 단면 가로와 높이는 이정도 이고 넓이는 이것 보다는 작았다.
이런 생각을 했다.
한동안 계속 될것 같다.
공원에서 산책을 하는데 구청에서 마음건강진단을 받으면 커피를 무료로 준다고 했다.
공짜라고?  그래서 까페라떼를 마셨다.
30여 문항을 체크했는데 동료들은 점수가 0에 가까운데
나는 34점이 나왔다. 
마음건강팀 직원이 나더라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를 적으라 했다.
우울감이 높다고 상담을 받으라 한다.
아마도 그 점수가 높은 것은 걸레봉  낙석 사건 때문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지금 막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2020.09.10.오후 3시39분)
마음건강팀 상담 전화다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금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전에는 마음건강 체크를 했을때 늘 정상이였는데
요즘은 계속 주의로 나온다. 
물론 덕분에 얼마전 1박2일 마음가온 캠프도 다녀왔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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