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
도저히 가만히 있을수는 없다.
더이상
그들의 죽음이 아니다.
바로 너의 죽음이다.
사랑하는 너의 죽음이다.
누군가 말한다.
"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에
좀 자기말 좀 덜하고
조용히 조용히
애도나 하고 그러지,
색깔을 입혀가며
왜 이렇게 분열을 조장하는지 모르겠다 "
원색적으로 대꾸하고 싶은 마음에
목소리가 잠기고 만다.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조금만 더 세월호에 대해 생각해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금방 알수 있는데
여전히
세월호 안내방송 같은 언론에
또 가만히 있고자 한다.
눈물 범벅인
위로를 위한 만남이다.
이 날 홍대앞 침묵 시위를 처음 열었던
용혜인 양의 여린 목소리를 들었다.
스물 여섯살 용혜인 양은
다음날 홍대앞 집회에서
은평경찰서로 끌려갔다.
이 시대는?
2014년?
홀로 가는 길보다
여럿이 함께 가는 길은
정겹고 든든하다.
촛불 시위가 횃불 시위보다
더 강력한 이유는
평화로운 시위이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서로에서 불을 옮겨 당길 수 있는
흔들리는 작은 촛불
그 안에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
유모차 바퀴를 보니
또 울컥한 마음이다.
목마를 탄 꼬마소녀도 보인다.
진보는 한 걸음 걸어 나가는 것이다.
첫발을 내 딛어야 나아갈수 있다.
손의 손을 잡고
한발자욱씩 나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소중하다.
아이야~~
온전히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라~~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 한다.
깨어나서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아무도 대신 살아 줄수 없는 삶
아무도 대신 죽어 줄수 없는 삶
" 왜 "
" 왜 "
" 왜 "
" 아니다 "
" 아니다 "
" 아니다 "
말 할수 있어야 한다.
이웃의 아픔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방법은
그들과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조금만 더
한번 더
용기를 내서
다들 함께
서로의 목소리를 낼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 불법입니다.
해산하십시오"
그들의 목소리가 낭랑하게도 들려온다.
그들의 목소리는 이럴때만 더 커진다.
부를땐 묵묵부답이더니만...
너무나 미안하다
스스로 설수 있는
생각할수 있는
진정한 지혜를
가르쳐 주지 못하고
어린 청춘들을
수장시켜버린
어른이라
너무도 큰 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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