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책방/山山山

덕숭산 수덕사

소연(素淵) 2019. 5. 23. 11:19





5월19일 새벽 5:30분 세사람이 조용히 숙소를 나왔다.

덕숭산은 처음이다.

 재성씨와 도련님은 아버님이 수년전에 조경일을 하시러 이곳에 계실때 고혈압 약을 전해주러 와서

귀경길에  수덕사에 들렸다고 한다.



 백제시대 창건한 수덕사 대웅전은 1306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단청이 없어서 해남 달마사가 떠올랐다.

이 두 남자들은 대웅전 보다는 그 앞 화단의  꽃 감상에 빠져있다.


금칠한 불상은 전부 청동으로  된줄 알았는데

대웅전안의 삼세불이 목조불상인것을 알고 놀랐다.



대웅전 벽화를 도련님이 보려했는데 보이질 않는다.



전날 밤 와인이 과했는지

죽을동 살동으로 따라가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힘들다.

우중이라 습한 기운도 많다.



교과서에서 본적이 있었나?

머리에 이중 갓을 쓴 미륵불 입상이 보인다.

눈에 익었던 석상이라 반갑다.



 500미터 산이라 산책하는 가벼운 맘으로

따라 나섰는데 한 순간 지리산 종주보다 힘들었다.


항상 50미터 앞을 가던 재성씨도

힘들어 죽겠다고 한다.

힘들면 속도 좀 늦추지...

아마도 숙소에 계실 부모님이랑 아가씨때문이겠지



덕숭산은 산이라는 느낌 보다는

수덕사의 일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산보다 절이 더 멋지고 의미가 있다.

이 밭의 채소들은 스님들이 드시겠지?

정상부근 나무 사이에 떨어진 배추잎은 누가 가져온걸까?

사람? 짐승?



올라갈때 보지 못했는데

내려갈때 보이는 길






사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다.

빙빙 돌아가면 불상에 절을 했다.


거기 왜 들어가니?


형 나도 나무야


읔  설정 사진 좀 찍어줘



5월 20일 새벽 5:30분

부스럭부스럭

셋이서 숙소를 나왔다.

오늘도  수덕사 또 가자

넘 좋다.


오는 비가 개어 화창하다.

푸른 하늘이 보인다.








수덕사 대웅전은 국보이고

그 앞에 삼층석탑은 여래탑이라 불리고 유형문화재이다.

그런데 이 탑은 자세 보지 않고 그 아래있는

금빛으로 새로 만든 탑을 더 우러러 보았다.

사전 공부를 하고 갔으면 더 좋았겠다.



지난 밤 바람에 떨어진 화분을 본 재성씨는

조심해야겠다. 바람에 떨어진걸 보니 맞으면 다치겠다.

도련님은 얼른 쓰러진 화분을 일으켜 세운다.

형수님 화분 만질때 스님이 보시면 오해할까요? 제가 그런줄 알고?

여행 첫날 아파트 화단에서 덩굴식물을 걷어내던 아버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가씨가 했던말

재는 답답하게 착해 ㅎㅎ

우리 도련님 너무 너무 착하다.




어제 힘겹게 오르던 계단인데

오늘은 한결 오르기가 쉽다.

바람도 솔솔 불고

컨디션도 좋다.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을 읽을때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의 일대기를 알게 되어 크게 감동을 받았었다.

만공스님과 수덕사의 인연은 참으로 깊다.

 '앞산에 딱따구린 없는 구멍도 뚫는데 우리 집 그 양반은 있는 구멍도 못 찾네.

늘 듣던 아리랑 가사를 법문이라 하셨는데 간화선 책을 읽고 흉내만 내는 나는 언제 헛 짚고 만다.





삼천대천 세계가 모두 내집이다.   / 만공스님 
    

인간의 일생은 짧은 한 막의 연극에 지나지 않는데, 이 연극의 한 장면이 막이 되면
희노애락을 연출하던 그의식은 그만 자취 없이 사라져 버리고 육체는 썩어 버립니다.

이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밥을 먹다가도 불의의 죽음이 닥치면 씹던 밥도 못 삼키고 죽어야 하고 집을 아
무리 많은 돈을 들여 찬란하게 짓다가도 느닷없이 화재라도 만나면 방 안에 한번
앉아 보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가는 것입니다.

 직접 내 자신의 일에도 이렇게 늘 자유를 잃어버리는데

인생의 집단인 사회와 국가를 세운다는 일이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자유의 바탕을 얻어야 근본적 자유를 얻게 됩니다.

자유가 어디에서 얻어지는 지도 모르는 인간들이 자유를 부르짖는 것은

쌀도없이밥을 지어 배부르게 먹는 이야기 만으로 떠드는 셈입니다.

 인생은 자기 업신(業身)의 반영인 이 몽환(夢幻) 세계를 실상으로 알고 울고
웃고 하는 것은 마치 은행나무가 물에 비치는 제 그림자를 이성으로 감응하여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생의 연속이 아니라, 생멸(生滅)의 연속입니다.

 인간이 죽는 순간도, 죽기전후 생활도 다 잊어버립니다.

입태(入胎), 출태(出胎)의 고(苦)도 기억하지 못하고
다만 현실적 육식(六識)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이 생활만 느끼고 사는것 입니다.

천당에 갔다가 지옥에 갔다가 사람이 되었다가 짐승으로 떨어 졌다가 하는

그러한 생이 금세 지나가고

또 한 생이 금세 닥쳐오는 것이 마치 활동 사진의 영상이 연속해 교환 이동되어

 빠른 찰나에 다른 장면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인생은 과거를 부를 수도 없고, 미래를 보증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가 현재이기 때문에 현재를완전히 파악하게 되어야

과거 현재 미래의 생활을 일단화(一單化)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과거에 사는 것도 아니요, 미래에 사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현재에만 살고 있는데 현재란 잠시도 머무름이 없이 과거에서 미래로 이동하는 순간이니

그 순간에 느끼는 불안정한 삶을 어찌 실(實)답다 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와 현재가 합치된 현실이 있나니 현재는 과거의 후신(後身)이요,

 미래의 전신(前
身)으로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입니다. 생략


감동이다.




하산길에 앞서가던 도련님이 신기한 듯 바닥에 떨어진 보라빛 꽃을 바라보며 물어본다.

이 꽃이 떨어져 있는데 어디서 떨어졌는지 안보여요?

나무에서 다른 수종의 나무가 자라나요 이 나무 신기하죠?


떨어져 있는 꽃과 나무를 높게 쳐다보다가

이거 오동나무에요

저 위에 보라빛 꽃이랑 열매보이죠?

도련님 의심스럽게 나를 쳐다본다.

잎이 큰 오동나무를 제가 잘 알아요


여행 내내 오동나무를 볼때 마다 알려준다.

오동나무가 많네요.

마침 꽃들이 보라색으로 많이 피어있었다.




전통 화장실 창사이로 보이는 푸르름







관음보살의 현신이던 미모의 수덕각시와 정혜라는 청년의 이야기가 내려오는 정혜사




'다산책방 > 山山山'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먹 늘보 탄생  (0) 2019.05.24
한라산 (2017년 2월4일~2월5일)  (0) 2019.05.24
화순 백아산  (0) 2019.05.16
지리산 종주  (0) 2019.05.14
한라산 상고대는 어디로?  (0) 2019.04.26